
혹시 마트에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가격이 수직 상승한 것을 느끼셨나요? 이 현상은 단순한 물가 인상이 아닌, 수천 년 올리브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는 절망적인 증거입니다.
세계 올리브유 생산 1, 2위를 다투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폭염과 최악의 가뭄이 이어져 올리브 열매 수확량이 평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. 특히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'올리브 나무의 흑사병'이라 불리는 자일렐라 파스티디오사(Xylella fastidiosa) 박테리아가 수백만 그루의 고대 올리브 나무를 고사시키며, 농장들이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습니다. 대대로 올리브를 키워 온 농부들은 모든 것이 재로 변했다고 신음합니다.
그런데, 이 절망적인 위기가 지구 반대편의 한 섬, 한국의 제주도에는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줬습니다. 제주도는 지난 40년간 여름철 열대야 일수가 늘고 겨울이 따뜻해지는 등 기후대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뀌면서 과거에는 힘들었던 올리브의 노지 재배가 가능해졌습니다.
2023년 기준 약 15곳, 6ha 규모로 아직 걸음마 단계인 제주 올리브 농가들의 전략은 '대체'가 아닌 '차별화'입니다. 이들은 수입산 올리브유와는 차원이 다른, 압도적인 신선함을 무기로 내세웁니다. 수확 후 착유, 그리고 긴 운송 과정을 거쳐야 하는 지중해산과 달리, 제주에서는 아침에 딴 열매를 그날 바로 짜서 톡 쏘는 매콤함과 신선한 풀 향을 가진 '햇기름'을 만들 수 있습니다.
제주는 프리미엄 싱글 오리진과 체험형 관광 상품을 결합하여, 대량 생산되는 지중해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, 미식가들이 열광하는 '작지만 강한' K-올리브의 성지가 될 가능성을 키우고 있습니다. 이 이야기는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식량의 미래를 어디서,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.